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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게시된 글들에서,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의 투자원칙과 투자종목 등에 대해 간략하게 분석했습니다만, 이용자들 중에는 워렌 버핏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테니까, 워렌 버핏에 대한 간단한 소개 글을 올립니다.
"예측 가능한 우량기업의 주식을 저렴할 때 사서 장기간 보유하라"
1998년 4월,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밀드레드 오스머(Mildred Othmer)라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남편인 도널드 오스머(Donald Othmer)가 세상을 떠난 지 3 년째 되던 해이다.
남편은 브루클린의 폴리테크닉대학에서 화학공학과 교수로 일했으며, 부인 역시 교사로 일했다. 두 사람은 모두 겸손한 사람들이었으며,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조용한 이들 노부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몇 달 후부터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각 신문들의 톱을 장식했는데, 그건 그들이 남긴 어마어마한 재산 때문이었다.
둘 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평생 복권에 당첨된 일도 없었다. 주식이나 재테크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밀드레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 이들이 남긴 유산은 무려 7억7천만 달러(7천억원 가량)나 되었다. 교육자로 평생을 산 노부부가 어떻게 그런 엄청난 재산을 모으게 되었을까? 답은 간단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단지 1960년대 초에 2만 5천 달러를 워렌 버핏에게 투자하고 오랫동안 기다린 것 밖에는 없었다. 버핏이라는 위대한 투자자 덕분에 이들 부부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갖게 된 것이었다. (이들 부부는 유산의 대부분을 폴리테크닉대학 등의 여러 기관에 기부하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워렌 버핏은 투자계의 슈퍼스타이다. 현존하는 주식투자자 중에서 버핏에 필적할 만한 사람은 없다. 그 어느 누구도 워렌 버핏의 실적에는 미치지 못한다. 워렌 버핏은 <포브스 (Forbes)>가 매년 선정하는 미국 내 400대 부자 중에서, 빌 게이츠의 뒤를 이어 2번째 부자에 올라 있으며, 400대 부자 중에서 유일하게 주식투자만으로 부를 쌓은 사람이다.
<살롱 (Salong)>은 1999년 8월 31일자 기사에서, 1965년에 버핏이 버크셔 헤더웨이(Birkshire Hathaway)의 경영권을 인수했을 때, 버크셔의 주식에 1만 달러를 투자했다면 1999년 8월에는 무려 5천만 달러의 가치가 되었을 것이며, 반면 똑 같은 자금을 S&P500 지수에 투자했다면 50만 달러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쓰고 있다.
그는 지난 40년 동안 연평균 23% 이상의 수익률을 올린 마이더스의 손이며, 버크셔 헤더웨이의 주가는 65년에 인수한 이래로 무려 1만 배나 불어나 한 주에 10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티머시 빅(Timothy Vick)은 <워렌 버핏의 가치투자전략 (How to pick stocks like Warren Buffett)> 중에서, 버핏의 투자규칙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성공투자의 핵심은 사업실적이 좋은 회사를 싸게 사서 주가가 적정한 수준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기업실적이 불안정하면 미래도 불확실하다. 일관된 수익이 중요하다. 일관된 수익은 일관된 주가 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일관성은 과거실적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장기간의 실적이 꾸준히 증가했다면 그 기업이 앞날도 밝다. 미래예측이 불가능한 종목에 과도한 비용을 지불해선 안 된다. 10년을 보유하지 않겠다면 단 10분도 보유해선 안 된다. 주식투자란 기업의 일부를 사들임으로써 그 기업의 재산을 공유하는 것이다. 사고 팔기를 반복하는 건 진정한 투자가 아니다. 주주로써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우량주 매수를 서두르진 마라. 뛰어난 수익률을 안겨줄 만큼 현재의 주가가 충분히 낮아져 있는지를 확인하라. 저렴한 가격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회사를 찾을 수 없거든 현금을 보유하고 기회를 기다려라.“
티머시 빅이 요약한 워렌 버핏의 투자철학을 보면, 상식적이면서도 명확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 워렌 버핏의 약력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워렌 버핏은 가치투자의 창시자라 불리우는 벤자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이 교수로 있던 콜럼비아(Columbia) 대학의 MBA과정에 입학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그레이엄을 만난 것이 버핏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주식투자로 돈 버는 길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졸업 후 그레이엄이 운영하던 월가의 투자회사에서 몇 년 간 일했습니다. 1956년에 고향인 네브라스카의 오마하(Omaha)로 돌아가 주위사람들의 돈을 모아 10만5천 달러의 '버핏 파트너쉽'이라는 펀드를 만들었습니다. 버핏 파트너쉽은 이후 13년 동안 연평균 30%의 수익률을 올렸습니다. (현재까지 오마하에서 거주하는 워렌 버핏은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버핏 파트너쉽은 1967년에 버크셔 헤더웨이의 대주주가 되었는데, 버핏은 경영권을 확보하자 버크셔의 운영자금으로 보험사를 사들였습니다. 1969년 들어서 주식시장이 폭등하자 거의 모든 주식이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판단한 버핏은 더 이상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선언하고 파트너쉽을 청산하였습니다. 물론 투자자들에게 현금과 주식 중 택일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어쨌든 파트너쉽을 청산한 후, 버핏은 투자자들에게서 버크셔 주식을 되사서 27%의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버크셔의 경영권을 확보한 이후 버핏은 그의 모든 능력을 발휘해 버크셔의 자산을 불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놀라운 능력 덕분에 버크셔는 30년 동안 자기자본을 매년 복리 기준으로 평균 23%씩 늘려왔습니다. 버핏의 초기 버크셔 지분가치는 700만 달러에서 2000년 들어 300억 달러(시황에 따라 300억 ~ 400억 사이를 오르내림) 이상으로 불어났습니다.
10만5천 달러에서 300억 달러로.. 투자역사를 통틀어 깨어질 수 없는 대기록을 작성한 워렌 버핏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자자로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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